Movie & Book

인간적인 도살

McGee 2010. 12. 25. 12:29
젖소를 닮은 커다란 동물이 자포드 비블 브록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살이 많고 네발 달린 초식동물로서, 커다란 눈망을에 작은 뿔, 호감가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몸을 구부려 인사하면서 이 동물은 점잖게 자리에 앉았다.

"저는 오늘 저녁의 메인 메뉴입니다. 제부위를 차례대로 소개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아서 덴트는 이 말에 화들짝 놀라 그 동물을 바라 보았다.

한편 비블 브록스는 입맛을 다시며 동물의 몸을 훑어 보았다.

자기 어깨를 가르키며 그 동물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 한점 잘라내면 어떨까요? 백포도주 소스를 곁들이면 아주 맛이 좋은데요."

"어...당신 어께를 말하는 거야?"

공포에 질린 아서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제 어깨죠. 선생님...저만한 고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동물이 자랑스레 대답했다.

갑자기 비블 브록스가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탐색하듯 동물의 어깨를 손으로 찔러 보기 시작했다.

"어깨가 맘에 안 드시면 여기 등부위도 아주 괜찮습니다. 제가 운동도 많이 하고, 사료도 정성껏 먹었거든요. 그래서 여기 고기가 두툼합지요."




"말도 안돼!! 이 친구는 정말 먹히고 싶어하잖아?!"

아서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들어본 적이 없어!!"

"이봐 지구인. 대체 뭐가 문제야?"

자포드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자길 먹어달라는 동물이 바로 앞에 앉아 있잖아! 이걸 어떻게 먹어?!"

아서가 대답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먹히고 싶지 않은 애들을 잡아먹는 것보단 훨 낫지 뭘 그래?"

자포드가 응수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렇게 맞받아친 아서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바꾸었다.

"제길 헷갈려...암튼 난 먹기 싫어. 어....난 그냥......야채 샐러드나 먹을래"

"제 간은 어떠세요?"

동물이 다시 권했다.

"지금쯤 아주 기름지고 부드러울텐데요. 몇달동안 억지로 사료를 입에 부어넣었거
든요."

"야채 샐러드나 달라니까!!" 아서가 쏘아 붙였다.

동물은 잠시 실망스런 눈으로 아서를 쳐다 보았다.


"샐러드를 줄거야 말거야? 내가 야채를 먹으면 안된다는 거야?" 아서가 재촉했다.

"어...선생님. 사실 그런 신세가 되길 싫어하는 까다로운 야채들이 꽤 있거든요. 사실 그런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하려고 저 같은 동물이 태어난 겁니다. 스스로 먹히길 원하고, 또 그런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는 동물이요....그래서 여기 제가 대령했습죠."

"어...물이나 한잔 줘!" 아서가 말했다.

"아, 이봐. 저녁 언제 먹을거야? 너도 배고프다고 했잖아!!" 참다못한 자포드가 끼어들었다.

"잔말말고 스테이크 네 접시로 해줘. 아주 살짝만 익혀서...서둘러! 빨리빨리!"

뒤뚱거리며 일어난 동물이 그릉그릉 웃으며 대답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선생님. 시간이 없으니 그냥 목을 긋고 총 한방으로 끝낼께요."

동물은 돌아서서 아서를 보고 윙크를 지어 보였다.

"걱정마세요. 이건 아주 '인간적인' 도살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