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Book2012. 6. 17. 13:06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정의' 하버드 강의 1강 말미에 나오는 내용중...


..... (철학서들과 강의 내용이) 아주 매력적인 얘기 같겠지만, 여러분한테 경고부터 해야겠습니다. 제 경고는 이것입니다. 이런방식으로 이 책들을 읽으면, 그러니까 자기인식을 위해 이 책들을 읽으면 몇가지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위험,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위험입니다. 이 위험은 철학이 우리를 가르친다는 사실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맞서게 만들며 우리를 뒤흔든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아이러니도 존재합니다. 이 강좌의 까다로움은 여러분이 이미 아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때문이죠. 우리가 살펴본 예들도 그런 것들입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제시했던 장난기와 진지함이 섞인 가정들 말입니다. 이 철학서들도 그런 방식을 취합니다. 철학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는데 이 방법은 새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친숙한 것들이 낯설어진 뒤에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인식은 순수함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인식으로 불안을 느낀다고 해도 생각과 지식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 공부가 어렵고도 매력적인 이유는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그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건 그 이야기가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여기까지가 개인적인 위험입니다. 그러면 정치적인 위험은 어떤 것들일까요?

 이런 강좌를 소개하는 방법중 하나는, 이런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 책들을 읽고 이 문제들을 토론하면 더 훌륭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된다', '공공정책이 뭘 가정하는지 검토하며 정치적 판단력을 기르게 될 것이다' , '공공의 일에 더 능률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등의 약속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은 불공정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정치철학은 그런 효과를 낳지 않습니다. 이런 가능성도 염두해 두십시오. 정치철학 때문에 여러분이 더 나쁜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죠. 훌륭한 시민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나쁜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해 두십시오. 철학은 거리를 두는 학문, 무력화 시키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소크라테스한테서도 확인할 수 있죠. <고르기아스>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칼리클레스의 대화가 나옵니다.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철학하는걸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철학은 예쁘장한 장난감이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정도로 빠지는 것은 괜찮지만 지나치게 철학을 추구하면 사람을 망친다. 내 충고를 듣게. 논쟁을 그만두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이룬 것을 배우게. 시시한 궤변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을 귀감으로 삼지 말고 돈을 잘 벌고, 평판이 좋고, 많은 복을 타고난 사람들을 귀감으로 삼게나."

즉, 칼리클레스가 소크라테스한테 한말은 "철학 따위 집어치우고 정신좀 차려! 경영대학원이나 가!!" 였던 겁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철학은 관습적인 것이나 기존의 관념, 신념등에서 우리를 떼어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이 개인적 위험과 정치적 위험들입니다.


 이런 위험을 맞닥뜨릴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회피 입니다. '회의주의'라는 이름의 회피 입니다. 회의주의는 이런식의 생각이죠. '우리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했어', '강의를 시작하면서 상상한 이야기나 논의한 원칙들에 대해 결론을 짓지 못했어',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칸트, 밀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그 오랜 기간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하버드 대학 극장에 모인 우리가 어떻게 한 학기만에 풀겠어? 원칙은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고, 그걸 토론할 필요 까지는 없는 것 같아. 이런것들에 이치를 따지는 건 불가능해.'  라고 말하는게 바로 회피이고 회의주의 입니다. 거기에 대해 저는 이런 대답을 내놓고 싶습니다. 이 문제들이 아주 오랫동안 논의돼왔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제기돼왔고, 사라지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 비록 해결이 불가능할지언정 피할 수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그 문제들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 그 문제들에서 도망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도덕적 고민을 포기하는 회의주의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회의주의란 문제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설명했습니다.

 "회의주의는 인간 이성의 쉼터다. 그곳에서 이성은 이념적 방황에 대해 성찰할 수 있지만 그곳에 영구적으로 정착해 살 수는 없다. 회의주의에 굴복한다면 이성의 동요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이 이야기들과 토론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가능성들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런 얘기죠. 이 강좌의 목적은 이성을 일깨워 방황하게 만들고 그것이 무엇을 이끌어 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EBS에서 방영된 샌델 교수님의 강의중, 1강 말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책을 먼저 읽으면서, 혼자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었는데.... 강의 영상을 구해서 보다가, 이 경고를 항상 염두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포스팅 합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 같은데 책에 안 실려 있는듯 하군요....(실려 있는데 제가 못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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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cGee